주님이 함께 하고 싶은 사람 (누가복음 19장1-10절)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그 내면을 살피시기 때문입니다(삼상16:7). 세리장 삭개오는 유대인들에게 매국노, 탐욕가, 죄인, 부정한 사람이었습니다. 키도 작고 볼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유대인의 집이 아닌 삭개오 집을 택하셨습니다. 그는 주님이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1. 간절함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사람의 시선보다 주님을 뵙고자 하는 갈망과 사랑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냥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따라 다니는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소유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서(잠언8:15) 주님과의 만남을 위해 자신의 소유 절반을 내 놓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향한 갈망과 주님과의 만남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2. 적극적인 행동으로 주님께 나갔습니다.
삭개오는 간절함을 적극적인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주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앞서 달려가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 미리 기다렸습니다. 키가 작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알고자 하는 간절함을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마음으로 생각만 하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생각과 지식을 뛰어넘어 적극적인 행동으로 주님께 나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었습니다.
주께서 삭개오의 마음을 읽으시고, 보는 즉시 그 집에 머무시겠다고 결정하셨습니다. 삭개오는 너무 기뻐서 급히 내려와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신 것도 아닌데, 스스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었습니다(마3:8, 눅3:8). 사람들은 회개는커녕 주님이 부정한 자와 함께한다고 비웃기만 했는데, 삭개오는 소유 절반을 내어 놓고, 속여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나 갚겠다고 회개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말로만 하는 회개는 회개가 아닙니다.
주님은 삭개오의 믿음을 보시고, 함께 하고 싶어 하셨고, 그 집에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은 삭개오 같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일입니다. 주님은 삭개오 같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도 주님이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 나의 소중한 것을 포기할 만큼 주님을 향한 간절함이 있습니까?
2. 나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주님께 나가 회개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3. 나는 주님이 함께 하고 싶은 사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