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고난인가? (골로새서 1:19-24)
작은 생물 하나도 생존의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도 확실한 생존의 목적을 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모르거나 상실한 사람은 우왕좌왕 산만하게 허둥대며 살다가 하나님 앞에 부끄럽게 서게 됩니다. 생존의 목적을 확실하게 알려면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 생존의 목적을 가르쳐 주시고, 생존의 목적을 완성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1. 십자가 고난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우리가 질 수 없는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는 죄가 전혀 없으신 주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지신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속죄함을 얻었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가 할 일은, 죄의 유혹과 악한 행실로 흔들리기 쉬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과 화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2. 화목의 목적은 거룩하고 온전한 자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온전한 자로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함입니다. 예배의 기초는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인데, 속죄함을 받고, 번제로 완전히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화목제의 본질은 하나님과 더 깊고 친밀한 관계를 통하여 그리스도에게까지 성화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3. 우리에게 남은 고난은 그리스도의 터 위에 온전하게 서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은 십자가에서 끝났지만, 아직 남은 고난이 있습니다. 그 고난은 우리를 반석이신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우고, 소망의 확신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터 위에 굳게 서지 않으면, 환난과 시험에 쉽게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려고,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꾼을 세워 주셨고, 바울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남은 고난을 육체에 채운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고난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난은 우리의 삶 속에 늘 존재하지만, 그 고난이 무엇을 위한 고난인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고난은 죄와 탐욕 때문에 당하는 허무한 고난이 아니라, 선을 행하기 위한 고난, 의를 이루기 위한 고난, 성화를 위한 고난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고난 뒤에 영광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고난조차도 유익하게 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았는지 함께 나누어 보세요.
2) 내가 겪는 고난은 무엇을 위한 고난인지 함께 나누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