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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나라에 이를 자 (요한계시록 22:12-15)

 

하나님의 나라는 당연히 들어 갈 사람이 들어갑니다. 세상은 불공평해서 편견도 오해도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공평하고 공의롭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요행수가 통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요행수가 전혀 적용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고 이용할 수 있지만, 공의와 정의로 일하시는 온전하신 하나님은 속일 수도 없고, 이용할 수도 없습니다.

 

1. 인격과 성품이 변화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두루마기 옷을 빨아서 희게 된 사람들이 들어갈 권세를 얻게 됩니다. 두루마기 옷은 우리의 성품의 옷을 말합니다. 우리는 옛 사람인 죄의 옷은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신의 성품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 변화되지 못한 죄의 성품이 올무와 함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2. 성품의 변화는 사람의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죄는 사람의 노력이나 의지로 해결 되지 않습니다. 죄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 곧 주님의 보혈로만 씻을 수 있습니다. 그 주님의 보혈은 말씀과 기도 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말씀과 기도생활은 잠시도 멈추면 안 됩니다. 말씀과 기도가 멈춰진 상태에서는 세월이 흘러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열매도 없습니다.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을 만날 때, 성품이 변화됩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 청년이 사도가 된 것은 그의 노력의 결과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만난 만남의 은혜가 박해자 사울을 사도로 변화시켰습니다. 율법적인 노력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과 짐만 늘어날 뿐입니다. 스스로 변화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주님을 더 가까이 하면, 저절로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은 멀리하면서 윤리적으로만 노력하는 수고는 무의미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고, 경험하고, 들어가는 것은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논리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가능했다면 주님이 오실 필요도 없고, 십자가를 지실 필요도 없고, 하나님께서 수고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넉넉히 이를 자는 주님을 가까이하고, 사랑하는 자, 두루마기 옷, 곧 성품의 옷을 빨아 입는 자들입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달은 은혜를 함께 나누어 보세요.

 

2. 나의 두루마기 옷은 언제 어떻게 빨아 입고 있는지 나누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