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선교역사
알렌 선교사 이야기 (1)
알렌 선교사는 1884년 26세의 나이로 언더우드보다 1년 일찍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웨슬리언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지만, 마이애미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1883년 미국 북장로교회의 의료 선교사로 중국 상하이에 파송되었다가, 거기서 거액의 선교헌금을 분실하고, 선교사들과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서 궁여지책으로 택한 곳이 조선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조선은 끔찍한 천주교 박해와 쇄국 정책과 청나라와 일본에 휘둘리고 있어서 분위기가 살벌하여 아직 선교사 파송 계획이 없었는데, 미국공관원들을 돌볼 의가가 없었기 때문에 조선으로 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선교는 생각도 못했고, 당시 미국 공사 푸트가 고종황제에게 의사로 소개한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그가 조선에 입국한 후 3개월 만에 조선에 ‘갑신정변’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에 대원군은 풍양 조씨와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를 잠재우기 위해 민씨 집안을 끌어들였는데, 그가 명성황후입니다. 민씨 집안을 쉽게 봤다가 명성황후에게 뒤통수를 맞고 말았습니다. 당시 권력은 대원군의 쇄국파와 명성황후의 민씨 정권, 김옥균의 개화파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김옥균의 개화파는 무모하게 조선의 근대화와 정치개혁을 앞세워 일본군의 도움을 받아 ‘우정국 개국 축하공연’이 있는 1884년 12월에 거사를 일으켰습니다. 민영익과 4대 당파 주요인물들을 암살하려 했지만, 깁신정변은 실패로 끝났고, 민영익에게만 칼로 중상을 입히고, 결국, 3일천하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알렌을 조선에 보낸 목적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칼로 난자를 당하여 죽어가는 민영익을 한의사들이 바라만 보고 있을 때, 서양 의술로 살려내게 하셨습니다. 민영익이 살아난 후, 거액의 후원금을 주었습니다. 알렌은 그것으로 1885년 4월10일 ’광혜원’이라는 병원을 세웠고, 2주쯤 후에 고종이 ‘제중원’으로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그것이 세브란스 병원이 되었고, 그가 의사들을 키우기 위해 세운 대학이 연세대의과대학교입니다. 한 사건으로 선교의 문이 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