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선교사-3>
1885년1월에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했던 언더우드는 3개월 후, 배를 타고 조선으로 출발했습니다. 그 배에는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부부도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미국 신학교연맹대회에서 만나 선교에 헌신하기로 맹세했는데, 같은 배를 타고 조선 땅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예정된 섭리였습니다.
드디어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부부는 1885년4월2일 부산항에 도착했고, 3일후, 4월5일 부활절 오후3시, 잔뜩 찌푸린 날씨에 부활의 복음을 안고 제물포항(인전항)에 조용히 도착했습니다. 사망의 어둠이 짙게 내려 암울했던 이 나라, 부정과 비리, 억압과 착취, 무지와 가난, 그리고 미신과 악습, 전쟁의 고통으로 신음하던 이 땅에 선교사들을 통하여 희망의 빛을 비추게 된 것입니다.
아무도 이들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 작고 초라한 발걸음이 우리나라 전체를 밝히고, 변화시키는 불씨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하나님만이 알고 계셨습니다.
그 당시 갑신정변 후유증으로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임신 중이었던 아펜젤러부부는 미국공사 푸트에 의해 도착하자마자 일본으로 떠나야 했고, 언더우드는 알렌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서울에 도착했지만, 알렌으로부터 목사 신분을 밝히지 말 것과 선교를 자제하고, 제중원에서 환자를 치유하는 일을 도와주면서 때를 기다릴 것을 요청 받았습니다. 천주교 박해 사건과 갑신정변으로 뒤숭숭해서 사람들이 꽉 닫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