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30 00:37

언더우드 학당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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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선교역사 - <언더우드 학당이야기>

언더우드는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습니다. 배재학당이나 이화학당보다 작은 규모지만, 18862월에 조선정부의 허락으로 작은 집을 얻어 고아원 형태로 학교를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언더우드 학당입니다.

시작은 단 한명이었지만, 훗날 한국을 이끌어갈 인재를 배출하는 요람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조선에는 어린이들은 모두 전통에 따라 가족이 교육을 담당했고, 가족이 없거나 능력이 없는 아이들은 거리를 떠 도는 신세가 되었는데, 언더우드는 그런 고아들에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배재학당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일반 가정에서 학생을 모집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이 컸고, 새로운 교육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었을 뿐 아니라, 양반들이나 서민들도 교육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여전히 과거시험을 통해서 출세를 하거나, 양만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졌고, 새로운 교육을 받는다 해도 특별한 비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신과 경계 속에서 시작했지만, 큰 인재들을 배출하고, 신학문과 비전을 열어주었습니다. 산업화와 함께 계급 사회가 붕괴되고, 이제 누구나 공부를 하면 더 나은 진로가 열렸습니다. 그 속에서 김규식과 도산안창호 같은 훌륭한 인재를 배출 할 수 있었습니다.

언더우드는 고아원이라는 기숙학교의 이점을 살려 지적인 교육만이 아니라, 심신단련과 신앙훈련을 통하여 지도자를 양성하는데 목표를 두었습니다.

언더우드 학당예수교 학당으로 불리다가 1905년 경신학교로 이름을 바꾸었고, 이것을 기반으로 연희전문학교를 열게 되고, 그가 꿈을 꾼대로 대학교와 신학교까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