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원과 의과대학>
언더우드는 경신학교 뿐만 아니라, 알렌과 함께 의학교를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기초학문이 없었기 때문에 단순한 간호사 양성 수준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학을 전공한 알렌이 실습위주로 가르쳤고, 언더우드는 화학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언더우드도 선교사 준비를 하면서 1년 정도 의학 공부를 했지만, 의술에는 재능이 없었습니다. 그는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주는 일을 잘 해서 병간호를 잘했다고 합니다.
환자들이 밀려들어 의학교에 집중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후에 헤론 선교사가 제중원 일을 도우면서 의과 교육에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헤론선교사는 의사이면서 선교의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인간관계가 까다로운 알렌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알렌은 선교사들과는 갈등이 많았지만, 민영익을 구해주면서 그와 관계가 가깝고, 고종이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라서 조선 사름들과는 관계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제중원을 사임하고, 조선 참사관 자격으로 미국에 건너가 한국공사관을 세우는 일도 했습니다.
선교사들과 갈등을 유발하던 알렌이 빠지면서 1887년 제중원 원장이 된 헤론선교사와 언더우드는 함께 제중원 병원과 의학교를 발전시켜 나갔지만, 헤론이 3년 후 1890년 이질에 걸려 30대 초반에 일직 죽으면서 다시 정체기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1893년 어비슨이 제중원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다시 활기를 찾았습니다. 어비슨은 언더우드가 안식년에 캐나다에 갔을 때,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비슨은 언더우드의 간절한 초청으로 조선에 오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의학교를 의과대학으로 발전시켜 의사를 양성하게 되었습니다. 어비슨에 의해 체계를 잡아 가던 제중원과 의과대학은 1905년 미국의 사업가 세브란스의 도움을 받아 병원과 학교를 확장하고, 새롭게 후원자의 이름을 따서 세브란스 병원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