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선교역사 - <시련 - 유언비어>
1884년 알렌이 입국한 이후 5년도 되지 않았는데, 제중원, 배재학당, 이화학당, 언더우드의 고아원 등 나라에 큰 도움을 주는 선교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나라가 뒤숭숭하던 시기에 백성도, 왕과 왕비도 선교사를 기댈 정도로 나라에 큰 힘이 되었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잘 나갈 때 시기하는 세력들로 말미암아 큰 시련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선교사들이 자기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한 것이라고 모함하고, 아이들을 모아서 납치한다는 소문과 병원은 사람을 잡아먹고, 눈을 빼서 약으로 쓰는 도살장이라는 유언비어가 난무했습니다. 심지어 아이들을 유괴하여 눈을 빼서 사진기 렌즈를 만든다는 소문과 아이들을 솥에 삶아 먹고, 여인들을 가슴을 베어가고, 배재학당 지하실에는 시체 저장소가 있고, 이화학당은 여자아이들을 유괴하여 자기 나라로 빼돌린다는 소문까지 퍼지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사례까지 등장했습니다.
심지어 아이들 등교를 막기 위해 돌을 던지고, 학당에 난입하여 경비원을 피살하기까지 했습니다. 프랑스공사관에 근무하는 오봉엽은 선교사들이 아이들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을 보았다고 소문을 퍼뜨리면서 군중들이 분노하여 길거리에 나서지도 못했습니다. 미국공사관에서 선교사들을 모아놓고 보호를 해야 할 지경에 이르자 조선 정부가 나서서 유언비어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고 포고문을 내리고, 외국 함대는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기까지 했지만, 한 달도 안 되어 가라앉았습니다.
선교사들은 모진 시련에 회의를 느끼면서도 절대 요동하거나 포기하지 않았고, 기도하며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이겨냄으로 오히려 전도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김창식이라는 사람은 소문의 진상을 파헤치고, 고발하기 위해 올링거 선교사의 가정에 위장 취업을 했다가 오히려 선교사들의 사랑과 헌신에 감동되어 예수님을 영접하고, 1901년 5월14일 정동교회에서 감리교 최초의 목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