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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교회 소래교회 >

1887년 황해도 소래에서 서상륜과 네 명의 청년이 언더우드를 찾아와서 세례를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선교가 금해진 조선에서 공식적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목숨을 건 위험한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로 목 베임을 당해도 괜찮다는 순교의 믿음으로 간청을 했습니다.

결국 언더우드는 몇몇 선교사들과 함께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서상륜은 1879년 만주에서 이미 세례를 받았고, 나머지 청년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 황해도 꼭대기에서 서울까지 찾아온 것입니다.

언더우드는 서상륜을 통하여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황해도 소래마을 뿐 아니라 황해도와 평안도에는 만주에서 들여온 쪽복음을 통하여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선교사들이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이미 성경이 먼저 들어가 있었고, 성경만 읽고도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는 언더우드는 1887년 여름에 황해도 소래로 향했습니다. 한양에만 머물러 있다가 처음으로 시골 마을 선교를 떠난 것입니다. 소래에 도착해보니 놀랍게도 선교사가 아무도 없는데 교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언더우드는 그곳에서 7명에게 세례를 주었고, 10명이 넘는 세례교인이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선교를 엄히 금한 나라에 성경이 먼저 들어왔고, 복음이 전해졌고,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은 신비한 기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기적 되에는 이미 하나님께서 만주를 통하여 예비하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872년 영국 스코틀랜드연합장로교회에서 중국에 파송한 선교사가 있었는데, 그들이 매킨다이어와 존 로스 선교사입니다. 이들이 조선에 대한 소식을 들었는데, 조선은 외국인이 엄격하게 통제된 곳임을 알고, 조선에는 못 들어가고 조선의 관문인 고려문에서 한 청년을 만납니다. 그가 바로 이응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