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감리교회 설립과 초기 선교의 특징>
언더우드가 교회를 세우고 2주 정도 지나서 1887년 10월 9일 아펜젤러도 정동에 집을 구해서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1885년 4월에 처음 입국했다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와서 2년 6개월 만에 첫 감리교회를 세웠습니다.
처음 교회 이름은 “벧엘예배당” 으로 시작했고, 그 교회가 오늘까지 “정동감리교회”로 남아 있습니다. 그 교회가 세워진 후 1주일만에 아펜젤러는 무명의 여인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그 여인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세례자였습니다. 1887년 10월23일에는 아펜젤러와 스크랜턴 그리고 5명의 세례교인이 모여 첫 성찬 예식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언더우드에 의해 새문안교회(장로교회)가 시작되었고, 아펜젤러에 의해 정동감리교회가 설립 되었고, 기독교 선교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선교는 의료선교로 시작해서 교육선교로 이어졌고, 선교사들이 입국한지 3년만에 교회선교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초기 선교사들이 시작했던 선교는 다짜고짜 복음부터 전한 것이 아니라,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그다음에 교회를 세움으로, 병원-학교-교회라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와서는 경제와 문화가 발전하면서 의료선교와 학교선교는 빛을 잃었고, 극히 일부분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선교로 남아 있고, 후진국의 선교모델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조선이 현실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의료선교와 학교 선교는 가장 효율적인 선교였습니다. 아무도 치유해 줄 수 없었던 백성들의 아픔을 치유해주었고, 희망이 없는 백성들에게 학교를 통하여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대고 위로받을 곳이 없을 때, 교회는 이 나라 백성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피난처와 안식처가 되어 주었습니다.
아픔을 치유해주고, 교육을 통하여 눈을 뜨게 하고, 인재를 발굴하여 키우고, 영혼을 구원하고 안식처를 제공하는 일이 선교의 시작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