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의 선교여행>
1888년 언더우드 부부가 신혼여행지로 삼았던 평안도 의주는 이미 의주 청년들이 만주에서 ‘쪽복음’을 많이 보급해서 기독교에 관심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이미 깊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언더우드를 만나 세례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100명이 넘었는데, 그중에 심사과정을 통하여 33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중에는 한문 구약성경을 외울 정도인 사람도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더우드가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아직 조선이 선교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공사와 여행 중에는 절대 전도하거나 세례를 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여행증을 받았는데,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세례받기를 원했으므로 이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언더우드는 성령의 역사를 거스를 수 없어서 그들을 데리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에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 사건을 일명 ‘한국의 요단강 세례’라고 합니다. 조선에서 세례를 한 것은 아니니, 법을 어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언어우드는 틈나는 대로 가족과 함께 여러 지역을 다니며 선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복음의 씨앗이 본격적으로 뿌려지기 시작하면서 성령의 역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치 작은 구멍 하나가 둑을 무너뜨리듯이 1884년 알렌 선교사 한 명으로 시작된 선교는 놀랍도록 열매를 맺었고, 그 시기에 선교사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선교가 시작되면서 선교사들의 사역도 많아지고 범위도 넓어지면서 교인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이 세운 학교도 제 기능대로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선교사들이 기초를 다져 놓은 후, 그다음 세대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초기 선교사들과 달리 전문 분야의 선교사역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초기에는 미약했던 사역들이 점점 내실을 다져 가면서 성장해 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