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확장 - 2세대 선교사 등장>
1884-1885년에 들어온 선교사들을 1세대 선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경험도 없이 열정만 가지고 왔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선교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이 일어났고, 그 정변에서 명성황후의 친정 조카인 민영식이 개화파에게 난자당한 큰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사건이 선교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알렌선교사가 그를 치료해주면서 제중원 병원이 세워지면서 백성들과 접촉점이 만들어졌고, 그것을 계기로 선교의 문이 열렸습니다.
1세대와 2세대는 불과 2년 차이지만, 1세대가 하는 모든 사역은 최초였습니다. 병원도, 학교도, 교회도, 세례도 모두 최초였고, 당연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서구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감춰진 나라였는데, 1세대 선교사들에 의해 서방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세대 선교사들은 이미 교회가 세워지고, 선교의 환경이 이미 만들어진 상태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할 일이 많았습니다. 1세대 선교사들에 의해 서방의 여러 교단 선교본부에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점점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고, 조선에 가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사역해야 하는지 알고 왔기 때문에 활발하게 사역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1세대 선교사들 곧 알렌, 언더우드, 헤론은 미국 북장로교회에서 파송했고, 아펜젤로, 스크랜턴은 미국 북감리교회에서 파송했습니다. 이들은 서울과 평양 서북쪽으로 선교활동을 했지만, 선교사들도 많지 않았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협력 사역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다음에 들어온 2세대 선교사들은 호주 장로교회, 성공회, 미국 남장로교회, 미국 남감리교회, 캐나다 장로교회, 침례교회, 등 다양한 교단에서 파송하였는데, 그들은 열정은 컸지만, 경험이 많지 않아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면 서로 협력의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언더우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련한 행정력 경험자를 초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