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성경과 한글 상용화 공헌 >
1890년부터 언더우드 선교사를 중심으로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지만, 한글을 모르는 문맹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한글을 가르치면서까지 성경을 배우게 했습니다.
번역된 한글 성경을 인쇄하여 보급하면서부터 한글의 과학적 연구와 상용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선교사들이 성경과 기독교 문서를 번역할 때, 모두 우리말 한글로 번역한 것이 하나님의 예정된 섭리였습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이후 4백 년이 넘도록 일부만 사용하고, 긴 잠을 자고 있던 천대 받던 언어였습니다. 선교사들에 의해 번역된 한글 성경이 보급되고, 한글 성경으로 예배하면서부터 한글은 일반 백성들 사이에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고, 한글에 깊은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생활 언어’로 자리 잡게 되었고,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것이 복음 전파를 위한 위대한 수단이 되었고, 오늘날 위대한 한글이 되었습니다. 역사학자들도 인정하듯이 한글이 우리나라 언어로 완전히 자리 잡게 한 것은 선교사들과 기독교의 큰 공헌입니다.
성경이 번역되던 1890-1911년 시기에 한글은 양반들과 조선 사회의 지식층들로부터 천대받던 하급 언어였지만, 성경 보급과 함께 한글이 널리 보급되면서부터 짧은 기간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선교사들은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글이 필요했을 뿐인데, 이후에 우리나라 고유 언어인 한글은 우리나라 인재를 양성하는 요람 역할을 크게 하였습니다.
1900년대에 접어들면서 교회 안에 주일학교가 만들어지고, 주일학교가 교육의 장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학교도 많지 않았고, 고급 언어로 인식되던 한문을 가르치는 곳은 많았어도, 근대 학교는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야학과 함께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고, 성경을 읽으면서 한글을 배웠는데, 특히 교육에서 소외되었던 여성들이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의 기회를 부여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