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02 09:58

전염병과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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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염병과 기독교>

1890년대 외국 군대의 수탈과 부패한 정치인들의 수탈, 질병과 재난으로 극심한 혼란과 가난을 겪을 때, 백성들의 유일한 피난처는 교회였습니다.

당시에 백성들이 교회를 찾은 것은 처음부터 복음의 진리를 발견해서 찾아온 것이 아니라, 당장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억압당하고, 소외당하고, 버려지고, 의지할 곳이 없던 자들이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던 1세기 유대 땅과 비슷한 형태였습니다.

쌀 때문에 교회 찾는다고 쌀 교인이라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죽느냐, 사느냐하는 절박한 문제였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처럼 풍요와 탐욕에 눈이 먼 악한 세대보다는 오히려 나았습니다.

1895년 청일전쟁 후 북쪽 평안도 지방에서 콜레라가 전국적으로 펴지기 시작했습니다. 청일전쟁과 동학농민혁명으로 거리마다 시체와 오물과 쓰레기가 쌓여 오염된 물로 전염병이 창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존을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기에 미신이 급속히 번졌고, 콜레라가 쥐가 옮긴 병이라 하여 고양이 그림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미신 신앙과 무지가 전염병을 더 키웠습니다.

이때 선교사들이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치료했고, 전염병의 원인이 미신이 아님을 일깨워주고, 위생과 방역에 힘쓰도록 지도하며, 물은 반드시 끓여 먹게했습니다. 미신과 인습의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선교사들은 백성들의 무지를 일깨우는 일에 힘썼습니다.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는 선교사들의 봉사와 섬김에 감동해서 선교사들을 고마워했습니다. 그런 계기로 자연스럽게 복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미신을 버리고, 복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활동과 나라가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지만, 힘이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