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분 개혁 – 무어와 백정 박성춘(1) >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대 곧 1880년대부터 1910년까지 온 나라가 큰 혼란에 빠져 아무런 힘이 없던 시대입니다.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지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그들을 돌보아 주거나, 관심을 두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시기에 가축을 도축하는 일을 하는 백정이라는 천민 계급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호적도 없고, 의관도 입을 수 없고, 평민들과 결혼도 할 수 없었습니다. 평소에도 천대받고 소외당하는데, 나라가 어려워질 때는 더 어려웠습니다.
이유 없이 천덕꾸러기 취급받고, 소외되었던 사람들을 헌신적인 사랑으로 섬긴 선교사가 있었는데, 그가 사무엘 무어(Samuel Moor) 선교사입니다.
그는 서울 관철동 백정마을에 ‘예수학당’을 세우고 천민들을 교육하는 일에 헌신하셨습니다. 어느 날 그 학당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아버지가 콜레라에 전염되어 죽게 되었다고 살려 달라고 무어 선교사를 찾아왔습니다. 그 학생의 아버지는 박성춘이라는 백정이었습니다. 아무도 백정이라는 천민을 돌봐 주는 사람이 없었고, 그 아들 역시 백정의 계급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무어 선교사는 당시 알렌와 헤론의 후임으로 제중원 원장 역할을 하면서 고종의 어의로 섬기고 있었던 어비슨 선교사를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어비슨은 당시 콜레라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목숨을 걸고 돌봤기 때문에 고종황제가 어디든지 가마를 타고 다닐 수 있도록 가마를 하사해주었습니다.
무어 선교사의 부탁을 받은 어비슨은 왕이 하사한 가마를 타고 백정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온 마을이 소동했습니다. 왕이 하사한 가마가 백정 마을에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루도 아니고 몇 개월 동안 정성으로 박성춘을 살려냈습니다. 그는 육신의 병뿐 아니라, 천민으로 설움 받던 마음의 상처와 증오심까지 치료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