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손, 이재형목사(2) >
왕족 이재형 대감은 방랑 생활하면서 주머니가 바닥나 남의 신세를 져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 소문을 들은 부인 정씨가 남겨 놓고 간 200석지기를 500석지기로 만들어 놓았으니 돌아오라고 독촉하여 집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부인 정씨는 말 그대로 부자가 되어 있었고, 이미 복음을 듣고, 백정 박성춘이 출석하던 승동교회의 교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1903년 원산에서 시작된 부흥 운동이 1907년 평양으로, 그 이후 전국으로 확산하여 갈 때 1907년 승동교회에서도 부흥사경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부인의 권고로 승동교회 부흥회에 참석한 이재형 대감은 방랑 생활 중에 복음을 전해주었던 마부 엄영수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이재형 대감은 마부 엄영수에게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 같은 형제라면서 마부 엄영수를 형님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아직 신분이 엄격했고 체면을 목숨처럼 여기던 시기였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은 완고한 신분 제도와 체면을 뛰어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재형이 예수님을 영접했던 1907년 그의 나이는 38세였습니다.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이 물러나고 순종이 즉위한 시기입니다.
복음은 이재형을 놀랍게 변화시켰습니다. 왕손이라는 지위와 특권을 모두 내려놓고, 평생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이웃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기로 결심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변화시키기 위해 마부 엄영수와 부인정씨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들의 헌신적인 섬김과 기도를 통하여 이재형이라는 한 사람을 구원하고, 그를 주님의 제자가 되게 했습니다.
그는 어려운 이웃을 은밀히 돕고, 헌금도 모범을 보였습니다. 1914년 승동교회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승동교회는 백정과 왕손이 함께 장로가 되어 섬긴 역사적인 교회가 되었고, 그는 1918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