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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화진 선교사 묘원의 시작(3)

 

양화진에 묻힌 선교사들 가운데 일제 암흑기 우리 민족을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헌신했던 선교사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20대 중반, 후반의 젊은이들로 자기 나라에서 이미 보장된 모든 특권과 혜택을 다 포기하고, 당시 세상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미지의 나라, 가장 가난하고 대책없는 위험한 나라 'COREA'에 복음을 안고 들어와서 복음만 전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무엇보다 일부 선교사들은 일제의 침탈을 우리 민족과 같은 마음으로 아파하였고,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위험까지 감수하며 일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선교사들은 병원을 설립하여 백성을 치유하고 전염병과 사투를 벌이고, 학교를 세워 의식을 개혁하고, 각종 사회제도, 신분제, 남존여비 악습, 우상 문화, 무당의 악습, 음주 도박문화를 철폐하고, 문맹을 퇴치하는 등, 우리 정신 문화 개혁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들은 나라의 미래가 교육에 달려 있음을 일깨워서 교육 사역에 집중했고, YMCA, YWCA 등의 단체를 세워 축구, 농구, 야구, 배구 등 스포츠 문화와 언론, 출판, 발전기, 성경 보급 등에 힘썼고, 선교사들을 통하여 미국에 유학을 다녀온 인재들이 교육을 통하여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뿌리내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뿌려진 복음의 씨앗들이 오늘날 한국교회와 사회 전반에 걸쳐서 어떠한 열매들을 맺고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협의회는 이러한 선교사들의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사랑을 계승하고, 보존하기 위해 양화진에 100주년 기념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더불어 서울시와 마포구청과 함께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을 조성하고, 지금은 양화진의 국가 사적지 지정을 위해서 힘쓰고 있습니다. 양화진에 묻혀있는 선교사들의 삶은 우리 민족의 근대사를 반추해 볼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