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선교사와 백정 박성춘장로(3)
무어와 에비슨이 백정 박성춘이 완쾌할 때까지 그 집을 왕진했는데, 박성춘은 왕의 의사인 에비슨이 자기 같은 천민을 치료하러 부정하게 여기던 백정 촌에까지 와 준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왕의 몸에 손을 댄 의사의 손으로 백정의 몸을 만진다는 것을 그 당시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백정이라는 신분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손 대대로 천대받고 무시당하며 살아야 했고, 한을 품고 온갖 설움을 견디며 살아가야 할 수밖에 없었는데, 고귀한 신분의 지위를 가진 왕의 의사가 조건없이 자신을 정성스럽게 치료해주었고, 동등한 한 인격으로 대우해 줄 때, 그 진실한 사랑에 감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어와 에비슨은 박성춘의 질병만 치유한 것이 아니라, 그 마음과 영혼까지도 치유해 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명받은 백정 박성춘은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그의 아들 봉출(박서양)이도 주일학교에 출석하며, 무어선교사의 도움으로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백정의 신분으로 의학교를 졸업하여 양반 귀족들까지 치료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의사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양반들은 백정의 손으로 치료받을 수 없다고 거부했지만, 신분보다 생명이 더 중요했습니다. 백정이 양반의 몸을 만진다는 것은 그 당시에는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백정을 거부하고 분가했던 양반들이 돌아왔고, 승등교회는 백정과 양반이 하나가 되어 함께 예배했고, 백정 출신 박성춘은 승동교회(곤당골교회)에서 1911년 안수받고 장로가 되었고, 3년 후에는 왕손이었던 이재형도 같은 교회에서 안수받고 장로가 되었습니다. 왕족과 백정이 함께 장로를 세운 역사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역사의 획을 긋는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차별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만들어 낸 기적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무어선교사의 헌신적인 사랑이 거두어들인 복음의 열매였습니다. 백정 해방자 무어는 1906년 장티푸스에 걸려 46세의 나이로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