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에 최초로 묻힌 선교사 - ‘헤론’
헤론은 보장된 길을 내려놓고 조선에 와서 헌신한 선교사로 양화진에 최초로 묻혔습니다. 그 이후 그곳이 외국인 선교사들이 묻히는 선교사 묘지공원이 되었습니다. 헤론은 테네시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20대에 모교의 교수로 초빙받은 수재였습니다. 그는 보장된 좋은 길을 내려놓고, 결혼 후 1885년 4월5일 언더우드가 들어온 후, 2개월이 지난 6월21일에 북장로회 선교사로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입국한 후부터 알렌, 언더우드와 함께 제중원에서 의사로 일했는데, 젊은 선교사들은 낯설고 불편한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서로 갈등도 많았습니다. 당시 조선은 상하수도와 오폐수 시설, 소각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쓰레기나 오물을 길가나 계곡, 시내에 버렸기 때문에 위생환경은 매우 불결했습니다. 그래서 천연두나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끊이지 않았고, 전염병이 유행하는 마을마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 갔습니다.
일부 선교사는 열악하고 불결한 환경에 질려서 바로 자신의 나라로 귀국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선교사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조선 사람들을 섬겼고, 몇몇 사람은 전염병에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헤론 역시 자신을 돌보지 않고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다가 그만 이질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까지 헤론의 병상을 지킨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언더우드 선교사입니다. 선교 초기에는 헤론과 언더우드 사이에 갈등도 많았지만, 위기의 시간을 함께하면서 서로 든든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헤론이 죽고 아내와 어린 두 딸이 남았는데, 헤론은 아내가 조선에 남아서 계속 선교에 헌신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도 돕던 조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헤론은 마지막으로 ‘나의 사역이 참 보잘 것 없었지만, 그것이 모두 예수님을 위한 것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