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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죽어야 사는가?(마태복음16:22-26)

 

아담과 하와가 뱀을 가까이 하여 인류에 불행을 몰고 왔습니다. 선악을 알기 전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위해 살았고, 모든 기준은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된 이후에는 사람이 자기 뜻대로 살면서, 자기를 기준으로 삼고, 유익이 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워하고, 파괴하고, 죽이는 사망이 이 땅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다시 원 상태로 회복시키는 방법은 옛 사람이 죽는 것뿐입니다.

 

1. 자기 십자가의 비밀을 깨달아야 합니다.

보기에 좋은 선악과는 덜 읽은 불완전한 사탄의 탐욕적 지식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완전한 지식인 공의와 정의를 행할 수 없고, 생명을 살릴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비밀은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의 통치를 벗어났던 우리를 다시 회복시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주님의 뜻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불의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다시 살아나게 하는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2. 공의와 정의로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항상 공의와 정의를 상실 한 사람들에게 임했습니다. 오늘날 공의와 정의를 상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십자가는 공의와 정의의 잣대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이기적이고 불의한 옛 사람은 죽고, 진리를 따라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자로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난 사람은 완전하신 주님을 왕으로 섬기며, 자기 뜻과 기준을 버리고, 오직 주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공의와 정의로 진리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3. 공의와 정의의 회복은 관계 회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공의와 정의의 기초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회복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될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공의와 정의를 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없고, 아프고 힘들고 불편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이웃을 사랑하여 공의와 정의를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참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은 불의한 옛 사람이 죽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큰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행할 때, 우리의 빛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호위하고, 하나님께서 앞장서셔서 길을 예비하시고, 우리가 기도할 때 응답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자가 되도록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았는지 함께 나누어 보세요.

 

2) 공의와 정의를 어떻게 실천하며 살 것인지 나누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