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2 20:03

<조선의 선교 특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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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교 특징들>

병들고 소외된 이들에게 고침을...

선교사들이 처음 시작한 일은 조선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은 1885년 서울에 제중원과 정동병원을 세워 의료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원산구세병원(1892), 전주야소(예수)병원(1897), 대구제중원(1898), 등을 세웠고, 1904년 세브란스 병원이 건립됨으로 의료선교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1910년까지 전국26개 지역에 29곳의 선교병원이 있었습니다. 1887년에 최초로 여성병원인 보구여관이 이화학당 안에 설립되어 치료의 손길이 미치지 않던 여성들과 가난한 이들의 치료비를 감해주거나 면제해 줌으로 의료혜택을 입었고, 6년간 2만 명의 환자가 몰렸습니다.
선교사들은 자신을 몸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 한반도 방방곡곡에 말씀을...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복음이 전해져 교회가 세워졌지만, 조선의 기독교인들은 보다 온전한 우리말 성경을 통해 말씀을 배우기를 고대했습니다.
선교사들은 성경번역에 착수했고, 곳곳에서 성경공부반과 사경회를 열어 말씀을 전했습니다. 말씀을 학습한 조선인들은 권서(勸書)로 전도부인으로 오지를 찾아다니며 성경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는 성경기독교(Bible Christianity)로 불렸습니다. 1903년 원산에서 시작하여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 사경회에서 정점에 도달한 한국교회의 대부흥운동은 서울, 선천, 해주, 대구, 개성, 공주 등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1909년 백만인 구령운동을 견인하였습니다.

□ 가르치고, 계몽하고, 국제사회에 알리고...

세계정세에 둔감했던 조선이 대내외로 위기를 겪고 있을 때, 선교사들은 교육과 계몽을 통해 근대화와 사회개혁의 촉매가 되었습니다.
신분제도와 사회적 모순에 절망하던 조선인들은 기독교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습니다.
헐버트는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국제사회에 알렸고, 베델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여 항일언론의 길을 열었습니다. 터너는 화성기독청년회(YMCA)를 통해 조선의 독립을 지원했고, 게일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연구하여 서구사회에 소개했습니다.
선교사들은 버려진 아이들과 천민 가정의 아이들을 우선 보육하고 교육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배재(아펜젤러), 경신,연희(언더우드), 이화(스크랜턴), 정신(앨러스), 영화(존스), 숭실(베어드), 광성(홀), 배화(캠벨), 신흥(레이놀즈)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이 학교들은 후일 선진 교육기관으로 발전하여 조선의 독립운동과 근대화의 동력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