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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분을 개혁한 무어 선교사

 

'백정 전도의 개척자''백정 신분 해방운동의 조력자'로 알려진 무어는 미국 신학교 재학 중 언더우드로부터 조선 선교에 대한 도전을 받고, 신학교 졸업 후 32세에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노방전도로 사람들을 모아서 곤당골에 교회를 세우고, 학교도 열었는데, 학생 중에 관자골이라는 백정 마을에 사는 백정의 아들 봉출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봉출이 아버지가 장티푸스에 걸려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어선교사 격려 방문한 후, (고종)의 주치의였던 에비슨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에비슨은 여러 차례 방문하여 기도하며 정성을 다해 치료해주었고, 봉출이 아버지는 완쾌되었습니다.

당시는 철저한 계급사회였기 때문에 양반들이나 고관들 뿐 아니라, 평민들도 백정을 짐승보다 못하게 여겨 무시하고 상대하지도 않았는데, 고귀한 신분인 왕의 주치의가 백정 마을에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여 기도하며 백정을 정성스럽게 치료하는 광경은 백정 자신들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비하고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봉출이 아버지 박씨와 백정 마을 사람들을 크게 감동시켰습니다. 감동받은 박씨는 곤당골 교회에 출석하여 세례를 받았고 성춘이라는 이름도 얻게 되었습니다.

봉출이 아버지 박성춘은 하나님을 만난 후 짐승보다 못했던 신분이 진짜 인격의 대우를 받는 참사람이 되는 감격을 얻었습니다. 그의 삶은 놀랍게 변하였고, 그는 백정을 구원하기 위해 전도에 열심을 냈습니다. 선교사들은 박성춘과 함께 복음을 듣고,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자녀가 된 백정들을 모두 형제로 대해 주었습니다.

백정 마을에 기적이 일어났고, 초라한 백정 마을이 매일 잔치집이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일이 전국에 소문났고, 수많은 백정이 교회를 찾았습니다. 운명론에 갇혀 자손 대대로 꿈도 없이 저주받은 백정으로 비참하게 살아야 했던 그들에게 복음은 새 삶을 선물해 주었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큰 소망과 복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양반 교인들은 백정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예배할 수 없다고 무어를 졸랐지만, 무어는 단호하게 복음 안에는 신분 차별이 없다고 거절했고, 이후에 양반들도 회개하고 변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