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7 09:35

기회와 시련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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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회와 시련 극복 >

조선사회는 개항과 함께 외세를 감당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고, 내부적으로도 당파싸움과 세도정치로 뿌리까지 깊이 썩어서 백성을 돌볼 마음도 힘도 없었습니다. 백성은 돌봄이 대상이 아니라 수탈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렇게 암울한 시기에 선교사들은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빈부귀천 가리지 않고 조건없이 헌신적으로 섬기는 따뜻함이 기댈 곳 없이 수탈만 당하던 백성들에게 큰 위안이었고, 감동이었고 힘이었습니다. 선교사들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와 애정은 썩은 정치인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선교사들에게 송두리째 빼앗길까 걱정이 된 것이지요.

선교사들이 무기를 가지고 온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으로 백성들을 따뜻하게 돌보고 섬겨준 것뿐이었는데, 백성들이 선교사들을 마음으로 기대고 있었고, 심지어 왕실까지도 선교사들을 의지했습니다. 선교사들의 이런 헌신적인 사랑은 권력이나 군대의 힘보다 더 강했습니다.

그래서 위협을 느낀 세력들이 치졸하게 유언비어를 퍼트려서 선교사들을 흔들었지만, 선교사들이 기도하며, 묵묵히 이겨나감으로 유언비어를 잠재우고, 시련을 통하여 더 강해졌습니다.

조선사회가 서양종교에 대한 배타심 때문에 선교사들은 직접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헌신적이면서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섬김을 실천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 둘 열매가 맺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언더우드는 전도의 열정이 컸기 때문에 독특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 후 사람들이 모여서 수다 떠는 곳을 찾아 책을 읽으며, 호기심을 유발시켰습니다. 호기심으로 찾아 온 사람들이 궁금해 할 때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노춘경이라는 선비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례를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