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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성경 보급과 부흥>

 

1890년부터 한글성경 번역과 보급으로 한글이 실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양반이나 지식인들이 아닌 일반 백성들이 성경을 공부하면서 글을 깨우치게 되고, 교육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교육은 양반들이 자신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했는데, 교회가 세워지고, 학교가 세워지고,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서 성경을 통하여 교회의 부흥과 문화와 사회 개혁이 동시에 이루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의 성장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놀랍게 부흥이 이루어졌습니다. 교인들이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5만명이 넘었고, 선교사들이 들어온 후, 20년 만에 10만 성도로 부흥을 이루었고, 기독교 학교가 208나 되었다고 합니다.

선교사들의 열정과 헌신이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성경번역보급, 그리고 성경공부와 교육에 집중한 결과였습니다. 더 크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지만, 마음이 아프게도 당시에 우리나라에 교회를 이끌어갈 만한 열정과 꿈을 가진 인재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조정의 무능력과 부패, 그리고 썩은 정치인들 때문에 인재가 나타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100년 동안 수탈을 당해온 백성들의 인내도 한계에 달할 정도로 너무나 혼탁한 사회였습니다.

늘 절망 속에 살아가야 했던 백성들에게 유일한 희망이 선교사들과 교회였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선교사를 만나고, 교회를 찾으면 공부할 수 있고, 꿈을 품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극소수였습니다.

 

조정과 지도자들은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 치며 한주먹 모으면, 그것조차도 털어가는 악랄한 인간들이었습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고, 울분을 참을 수 없어서 백성이 들고일어났습니다. 그것이 동학농민운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