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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에서 복음의 싹이 >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가 만주와 조선의 경계인 고려문을 방문하여 이응찬을 만난 때가 1874입니다. 우리나라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남쪽 일본을 통하여 들어 온 때가 188545이니까, 선교사들이 공식적으로 파송되기 11년 전에 이미 북쪽에서 복음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로스선교사는 이응찬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백홍준, 이성하, 김진기와 함께 만주 영구로 향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선교사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었고, 로스와 매킨타이어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응찬 일행은 처음에는 조선에서 엄격하게 금하는 종교라서 복음을 거부했지만, 복음의 말씀은 듣기만 해도 능력이 있었습니다. 결국 3년 만에 1876년 그곳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서상륜과 그의 동생 서경조가 홍삼 장사를 위해 만주 영구에 왔는데, 그곳에서 열병에 걸려 목숨이 위태해졌습니다. 그 때 그곳에서 로스선교사를 만나서 선교부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치료 받고 목숨을 건졌고, 그것을 계기로 복음을 듣고, 퇴원한 후, 1879년에 로스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로스 선교사는 조선에 복음을 전하려면 한글 성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함께한 조선 청년들과 함께 성경번역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소책자 교리서를 먼저 번역하고, 그 다음에 신약을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1882년 봄에 예수성교 누가복음젼셔 같은 해 5월에 요한복음을, 1884년에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번역했고, 1887년에는 신약전체를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이응찬 서상륜 일행은 조선과 만주를 왕래하면서 성경을 조선에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고려문을 통과할 수 없어서 책을 뜯어 줄을 만들어 국경을 넘어왔고, 그렇게 들어온 성경으로 복음을 전하여 18명이 전도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이 없어도, 주님의 이름으로 예배 하는 감격을 누렸습니다. 이렇게 북쪽에서, 그리고 남쪽 일본을 통하여(수정) 성경과 복음이 들어오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